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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부산 후판공장 시운전... 이윤호 상무

한국제일의 제철소를 동국에!

1971년도에 입사하니 부산에 후판공장이 시운전에 들어갔습니다. 

생산공장에 들어가서 시운전을 하면서 그때 당시 정비부 공무과에 배치되었습니다.

마침 담당 부장과 과장께서 강판공장(후판공장)이 가장 핵심공장이고 가장 중요하니 정비까지 다 맡아 달라고 해서 생산과 정비를 함께 맡았습니다.

원자재인 슬라브의 소재가 부족했고 고철을 원자재로 하는 제장부분에서도 철 스크랩을 통한 쇳물생산은 한계가 있었기 대문에 양질의 소재를 얻고자 1974년 용광로 설치를 검토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동국제강 부산공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한국 제일의 제철소를 동국에!’란 기대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1974년에 용광로 건설본부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당시 8명이 1년간이나 용광로 건설을 검토하였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1970년도에 10월에 입사시험을 봤는데 11월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노회장(창업자 장경호 회장)님을 비롯해 다섯 형제분(창업자의 자제)들이 거의 참석한 가운데 면접시험을 치렀습니다.

처음에 부산공장 근무를 지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천공장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가 아니면 내려가지 않겠노라고 애기했지만 노회장님께서 ‘부산공장이 최신공장으로써 시설도 최근에 했고 생산도 하고 있으니 배우는 게 많을 것’이라며 현장 생활을 최소한 3년이상은 거쳐야지 올바른 기술자가 되고 관리자로서의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공장근무를 적극 권유하였습니다.

입사 3년간은 장학금 받고 공부하는 걸로 생각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노회장님의 말씀은 지금도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다음날 모교인 연세대로 지도 교수님을 찾아뵈러 갔을 때 담당 교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들이 처음 입사하면 회사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현장과 학교는 다르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는 게 그게 진짜배우는 거니까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다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해라.” 

두 분 말씀이 어찌 그리 똑같던지, 몇 년 근무를 하면서 후배들을 교육시켜보니까 그 말이 딱 들어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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