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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화의 두 성과...이철우 사장

급여통장과 수출업무 전산화

전산을 전공하고 입사한 이철우 씨(향후 사장까지 올라감)는 철강 최초의 전산화를 시도했고, 전산 시스템으로 처음 시도한 업무는 ‘급여계산’ 이었습니다. 

급여업무는 인사과에서 배워서 한국전자계산소에 키펀치를 맡기고, 정보처리는 과학기술연구소에 있는 CDC 컴퓨터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때 컴퓨터로 계산한 것이 개인별 급여였습니다. 

그렇게 계산한 급여를 각 과에서 받아 부서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은행에서 급여 통장을 하나씩 만들어서 통장에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철우 씨가 실무자를 소집, 회의를 열어 의견을 물었더니 과반수가 찬성이고 과반수가 반대였습니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급여통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시도는 해보기로 하고 은행 측에 협조를 요청하자 의외의 반대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 반대 속에서도 급여통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급여통장을 해주지 않으면 주거래은행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총무부장 김중철 씨의 위협(?) 덕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철우씨의 전산화 첫 작품으로 급여통장이 탄생되었습니다.


급여 전산화 다음 작품으로 이철우 씨가 생각한 것은 수출업무의 전산화였습니다. 장사가 잘 될수록 바빠져서 매일 밤샘을 하는 부서는 수출부였습니다.

수출주문을 받으면 L/C가 따라오는데, 그 L/C를 담보로 돈을 빌려서 원자재를 사고, 제품을 생산합니다. 그렇게 생산된 제품은 코일별로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톤과 파운드를 같이 병기해서 매번 패킹리스트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이 업무는 자주 하는 일이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들이었습니다. 수출은 급한데 매번 통신으로 리스트를 받으려니 오류가 많이 생겼습니다. 오류가 많은 만큼 수출증권을 받는 은행원들의 확인 작업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수출업무를 전산화하면서 은행에서의 확인도 불필요 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로 패킹리스트와 인보이스를 가져오는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1973 년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이철우 당시 연합철강 전산부 차장 특별 인터뷰의 내용에 따르면, 이철우 차장은 1974 년부터 공장과 본사를 잇는 완전한 온라인 시스템을 형성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는 EDPS 요원에 대해 ‘현업 각부서 업무에 대해 관련 사원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을 부하 직원에게 요구하고 그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공장과 본사를 잇는 온라인 전산화 시스템을 완료하고 경영 원가 절감과 재고의 합리적 비축과 사입, 수출업무 전산화를 통한 인력 성력화 등을 이루어 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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