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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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을 기다린 주주총회, 새로운 미래를 결의하다.

17년을 기다린 주주총회, 새로운 미래를 결의하다.

 

19891, 평소 같았다면 분주해야 했을 부산제강소 공장이 고요했다. 공장 곳곳에 있어야 할 800여 명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공장은 더없이 적막했다.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임직원들이 공장을 비우면서까지 찾아간 곳은 부산일보였다.

 

당해 2월 말에는 서울 본사에서는 동국가족협의회 회장을 필두로 회원 10여 명이 경향신문을 방문했다. 부산과 서울, 두 그룹이 언론사를 찾은 목적은 같았다. 허위 보도에 대한 항의였다. 문제가 된 내용은 동국제강이 연합철강을 다시 과거 사주에게 넘길 것이라는 것이었다.

 

동국제강 임직원들은 이 기사가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정정보도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연합철강이 동국제강그룹의 구성원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임직원들의 행동이었다.

 

1986, 동국제강은 연합철강과 국제종합기계, 국제통운을 약 1년의 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인수했다. 1962년 설립된 연합철강은 창업주 권철현 회장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1978년 경영권이 국제그룹으로 넘어갔고, 1985년 국제그룹마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해체하면서 동국제강이 품게 된다. 당시 동국제강이 동종업계이면서 부산에 연고를 둔 철강기업, 재무구조가 양호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연합철강은 동국제강이 1대 주주로, 38%의 지분을 갖고 있던 권철현 씨가 2대 주주로 자리하며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동국제강은 연합철강 인수와 함께 철강 전문그룹으로의 재편을 시도했다.

 

당시 연합철강의 수권자본금은 95억 원에 불과했고, 주요 설비들은 노후한 상태였다. 동국제강은 경영정상화와 설비 투자를 위해 수권자본금의 증자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서는 주주총회의 정관변경 승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2대 주주였던 권 씨는 자본금이 늘어나면 본인의 지분율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번번이 반대해 무산됐다.

 

그럼에도 동국제강은 끈임없이 권 씨에게 협조를 요청하며 설득했다. 증자를 통한 노후설비들의 신증설이 결과적으로 연합철강의 경쟁력을 만들 것임을 설득했다. 당시 연합철강의 사장은 주총 직전까지 권 씨를 만나 주주로서의 책임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경영권 회복을 염두에 뒀던 권 씨의 반대는 완강했다.

 

연합철강은 무려 17년 동안 증자 무산이라는 곡절을 겪었다. 그 사이 상장기업이던 연합철강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량이 부족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가능성까지 갖고 있었다. 2002, 상장폐지 위기가 현실이 되기 직전, 권 씨가 회사 주식을 대거 장외에서 처분했고 임시주총을 열어 수권자본금을 500억원으로 늘리는 정관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동국제강은 권 씨 타계 이후 연합철강의 2대 주주가 된 권호성씨(권철현씨의 장남)의 보유지분을 대승적 차원에서 전격 인수하고 2003, 무려 17년 만에 2대에 걸친 경쟁관계를 끝냈다.

 

2004316. 서울 대치동 연합철강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주주들은 동국제강의 장세주 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하며 오너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회사 이름도 유니온스틸로 변경했다. 비로소 연합철강의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니온스틸은 회사 슬로건을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새롭게 시작한다라고 정했다. 이후 유니온스틸은 동국제강에 합병되었다가 인적분할 되며 동국씨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동국씨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컬러강판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국제강그룹의 연합철강 인수와 증자는 결과적으로 주주들의 이익으로 환원되었다. 설비와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였고 이는 곧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를 제고하는데 기여했다.

 

기업의 가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국제강그룹은 연합철강 인수 후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겪으면서도 기업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잃지 않았다. 위기와 갈등 속에서도 끊임없이 설득하고 선택했으며 그 결과를 증명해 왔다.

 

기업의 가치는 결국 흔들리는 순간에도 지켜낸 의지의 총합이자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데서 비롯된다는 걸 동국제강그룹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