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개척기

창업~1969년

민간 철강산업 시대를 열다

장경호 회장이 대궁양행으로 사업을 시작한 1929년 이후 95년, 그리고 1954년 동국제강 창립으로 민간 철강산업을 개척한 이후 70년은 동국제강그룹의 자부심입니다.

장경호 회장은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했고, 남선물산(1935년), 조선선재(1949년 1월)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1929년부터 25년간은 동국제강을 향한 태동이었고, 드디어 1954년 7월 7일 동국제강이 민간 철강(제강)기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동국제강의 탄생 이후 물류기업 인터지스의 모태인 대성기업(1956년), 동국씨엠의 모태인 연합철강(1962년, 현 동국씨엠) 등도 줄이어 탄생했습니다. 동국제강은 1963년부터 부산 용호동 소금뻘을 매립하며 대규모 철강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용호동 공장은 한국 민간 철강산업의 모태가 됐습니다.

동국제강은 부산제강소에서 국내 처음으로 고로 용광로 방식으로 쇳물을 만들어 철강사에 이정표를 세웠고, 현대식 전기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동국씨엠은 1967년 국내 최초로 냉간 압연 공장을 준공하는 등 동국제강그룹의 자취는 한국 철강산업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성장기

1970~1979년

성장으로 우뚝 서다

동국제강은 재계의 실력자로서 성장 가도를 달렸습니다. 기업 문화의 기틀을 세우며 질적인 성장까지 아우릅니다.

동국제강은 미국(1970년), 일본(1971년) 지사를 설립했고, 냉연 제품으로 동국씨엠(옛 연합철강)은 인도네시아 등 수출(1970년)을 시작합니다. 1971년 한국철강 인수, 1972년 한국강업 인수, 1972년 세화통운 설립 등 부산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그룹의 확장이 펼쳐집니다. 동국제강그룹의 최초 기록은 계속됩니다.


동국제강이 1971년 국내 최초로 후판을 생산했으며, 동국씨엠은 1972년 국내 최초로 컬러강판 공장을 세웠습니다. 동국씨엠은 1974년 철강업계 최초로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동국제강그룹 기업문화의 기틀도 다져집니다. 1974년 옛 청계초등학교 부지로 본사 사옥을 이전했습니다. 창업주 장경호 회장은 1975년 전 재산을 나라에 헌정했고, 이를 기반으로 불교진흥원이 설립됐습니다. 장상태 회장은 1977년 그룹 경영이념을 정립, 공표했습니다.


도약기

1980~1989년

재계 10위 그룹으로 도약하다

동국제강은 연합철강(현 동국씨엠) 등을 그룹에 편입하고 그룹 매출 재계 10위로 도약합니다.

동국제강그룹은 철강 외에도 물류(천양항운), 소재(창원), 기계(국제종합기계) 등 각 사업의 고도화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두각을 나타냅니다. 1986년 동국제강은 연합철강(현 동국씨엠) 등을 그룹에 편입 완료했습니다. 동국제강그룹의 일원으로서 연합철강은 국내 최초로 전기아연도금강판을 생산했고, 갈바륨(알루미늄아연도금강판)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습니다.


동국제강은 1986년 5월 인천공장에서 시간당 세계 최고 제강생산량을 기록했고, 1988년 국내 철강사로서는 처음으로 중국과 직교역의 물꼬를 텄습니다. 동국제강 노조가 1987년 9월 인천에서 설립됩니다. 동국제강은 1988년 후판사업을 포항으로 이전을 추진하며, 다가올 포항 시대의 포석을 놓습니다.

고도 성장기

1990~2000년

성장의 모태가 된 지역사회에 보답한다

장상태 회장은 주력 사업장을 포항으로 이전하는 대역사를 완성합니다.

1990년 동국제강 포항 1후판 공장의 가동으로 시작해 주력 부산제강소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대역사가 이뤄집니다. 1995년 동국제강 포항 2후판 공장, 형강공장을 착공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 11월 형강공장, 12월 제2후판 공장을 가동했고, 1999년 2월 포항 봉강 공장 준공에 이르기까지 약 10년에 걸친 대역사가 마무리 됩니다.


무엇보다 1994년 2월 동국제강 노조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며 노사문화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동국제강은 조합아파트 건립 등 복지를 확장했고, 1996년 대원문화재단(현 송원문화재단) 설립, 동국제강 부산 신평공장(1999년 8월, 옛 영성철강)을 통한 고용 보장 등으로 ‘성장의 모태가 된 지역사회에 보답한다’는 철학을 실천합니다.


포항제강소 건설에 이르기까지 45년간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선도했던 장상태 회장은 2000년 4월 4일 타계(무궁화 훈장 추서)합니다. 장상태 회장 타계 후 그룹은 동국제강그룹에서 동국산업그룹(추후 CS그룹 추가 분할), 한국철강그룹을 분리합니다.

제2창업기

2001~2010년

‘변화와 성장’을 향해 도전하다

3세대 경영을 시작한 동국제강그룹의 장세주 회장은 제2 창업을 선포했고,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멕시코, 브라질 등지에서 변화와 도전으로 동국제강그룹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동국제강그룹을 이끌게 된 장세주 회장(2001년 9월 취임)은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포항제강소를 철강업의 주력으로 삼아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후 동국제강은 6년만에 두배 성장(1995년 매출 1조원 돌파 → 2003년 매출 2조원(8년) → 2009년 매출 5조원 돌파(6년))합니다. 동국제강그룹의 ‘변화와 성장(Change & Growth, 창립 50주년 비전)’은 계속됐습니다. 유니온스틸차이나 설립(2001년), 국내 최초 연속용접압연설비(EBROS) 도입(2003년), DK유엔씨(현 동국시스템즈) 설립(2005년 11월), 브라질 쎄아라스틸 착공(2005년 12월, 이후 브라질 CSP 제철소), 그룹 통합데이터센터 오픈(2006년 4월), 동국씨엠 연속산세압연라인(PL/TCM) 준공(2007년 8월), 멕시코 코일센터 준공(2008년 2월), 포항 중앙기술연구소 준공(2009년 10월), 동국제강 당진 후판 공장 준공(2010년 5월), 그룹 사옥 ‘페럼타워’ 입주(2010년 8월), 동국제강 인천 에코아크 전기로 준공(2010년 10월) 등 수많은 이정표가 세워집니다.

혁신기

2011~2022년

개혁과 혁신으로 나아가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합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뉴노멀로 확산된 저성장 불확실성의 시대, 동국제강그룹의 도전은 멈춤이 없었습니다. 동국제강은 내진 철근이라는 새로운 표준(KSD3688, 2011년 11월, 추후 KSD 3504로 개정)을 만들었고, 동국씨엠은 ‘럭스틸’이라는 브랜드(2011년 10월)로 철강 마케팅을 혁신했습니다.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국내 최고 선속도로 철근을 제조(2012년 6월)하는 생산 혁신에 성공했고, 포항공장에서는 국내 최장 코일철근을 생산하기 시작(2015년 12월)합니다.


2015년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현 동국씨엠)이 통합 출범했고, 장세욱 부회장이 CEO로 취임합니다. 통합된 동국제강은 디지털프린트 컬러강판, 내진 철근, 국내 최고 강도 철근, 항균-항바이러스 컬러강판, 컬러강판 제조 공정의 친환경 혁신, 온라인 플랫폼 ‘스탈샵’ 런칭 등 친환경 철강사로서의 변화를 선도합니다. 이와 함께 중국 등의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며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합니다.

재도약기

2023년~

100년 기업을 향한 출발점에 서다

지주사 체제로 그룹을 정비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섭니다.

2023년 6월 동국제강을 동국홀딩스(지주사), 동국제강(열연 철강사업), 동국씨엠(냉연 철강사업) 으로 분할 출범합니다. 동국제강그룹은 1954년 대원 장경호 회장의 ‘철강보국’이라는 창업정신과 1977년 송원 장상태 회장이 물려준 경영이념을 유전자에 새기고 2024년 창립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