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1대 장경호 회장
‘대궁양행(大弓, 1929년)’,‘남선물산(南鮮, 1935년)’,‘조선선재(朝鮮,1949년)‘, ‘동국제강(東國, 1954년)’…선각자 장경호 창업주의 사업은 한결같이 민족의식과 불교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창업주 1대 장경호 회장
‘대궁양행(大弓, 1929년)’,‘남선물산(南鮮, 1935년)’,‘조선선재(朝鮮,1949년)‘, ‘동국제강(東國, 1954년)’…선각자 장경호 창업주의 사업은 한결같이 민족의식과 불교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철강보국'의 정신으로 시작한
동국제강의 첫번째 못을 생각합니다.
기업가이며, 불교인
‘철강보국’
동국제강그룹 경영의 기틀을 세우다
선각자 大圓 장경호
(1899~1975.9.9)
장경호 회장의 생애
장경호 회장의 생애
철강보국의 꿈
“철강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기업을 경영하겠다.”
“회사에 앞서 가정부터 돌봐야 한다. 수신제가해야 밖의 일도 잘되는 법“
“돈을 왜 버는지 아느냐? 좋은데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걸 누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삶의 보람도 달라진다. 동국제강은 나의 것도 너희 것도 아니다. 이 나라 부강과 민족을 위해 세웠으니 동국제강은 그들의 것이다"
비움의 리더십
호는 대원(大圓),1954년 서울 당산동에서 오늘날의 동국제강그룹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무에서 시작해야 했던 시대를 스스로 개척했고, 땅에 떨어진 못 하나도 아끼는 검소를 동국인들에게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장경호 창업자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그가 스스로 이룩해 낸 모든 것을 사회로 환원했다는 점에 수렴됩니다.
기업인의 탐욕이 넘쳐나던 시절, 앞장 서서 비움을 실천한 그의 행위는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사랑의 실천이자, 신념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좌우명('자아를 발견하고 세상에 낙원을 이룩한다')대로, 그는 동국제강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75년, 사유 재산 30억 원(현재 가치로 약 5,000억 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업인이면서도, 평생 불교 정진했고, 문화 진흥에 힘썼던 그를 기려 불교진흥원이 설립됩니다.
국내 최초의 제강공자인 큐폴라 공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