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KUK STEEL GROUP
“사람이 동국 최고의 자본이다.
사람을 위해 투자하라”
일제강점기, 부산지역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서울과 일본에서 유학한 신지식인으로서 30대 스스로 사업을 일구어 자수성가했고, 불교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을 사업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인물입니다.
일본인이 만들어 파는 타월이 비싸다고 우리 손으로 짠 무명수건을 사용할 정도였고, 지남철로 고철을 주울 정도로 근면과 검소함으로 일관하여 주위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대궁양행(1929년. 대궁은 활을 숭상하는 민족을 의미함)부터 남선물산(창고, 도매업), 조선선재(철선 제조), 그리고 동국제강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운 모든 기업들에는 민족과 불교 의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1954년 동국제강을 설립함에 있어서는 ‘기업을 일궈 나라에 보은하겠다”는 철강보국의 정신과 “사람이 최고의 자본이다. 사람을 위해 투자하라”는 인본주의 정신, 그리고 불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그는 1975년 임종 전 본인의 전 재산 30여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며 무사무욕(無私無慾)을 실천했습니다.
자세히보기“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슴없이 개혁한다.”
동국제강그룹을 통해 한국 철강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장본인입니다.
장상태 회장은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50년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1955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을 정도의 재원이었습니다. 1956년 29세의 나이로 선친(장경호 회장)의 권유로 동국제강에 합류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부터 장상태 회장이 쓴 동국제강그룹의 성장사는 한국 철강산업 자취 그 자체였으며, 장상태 회장은 재계의 리더로서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동국제강, 연합철강, 한국철강, 동국산업, 부산주공, 한국강업 등을 아우루는 재계 10위권의 철강 그룹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슴없이 개혁한다’는 개선과 혁신을 경영의 핵심으로 삼았고, “아내의 반지를 팔아서라도 설비에 투자하겠다”며 산업의 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장상태 회장은 본인이 60년대 건설했던 부산 용호동 공장을 1999년까지 포항으로 이전하는 대역사를 이룹니다. 그리고 2000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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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STORY
불꽃의 꺼진 자리에서 배움의 불빛을 켜다
1998년 12월. 공장의 마지막 불빛이 꺼졌다. 황무지의 돌덩이를 맨손으로 솎아내고, 무른 땅을 다져 50톤의 전기로를 놓았던 땅. 작은 철근 공장을 굴지의 철강 기업으로 일으켰던 땅은 이제 다시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동국제강그룹에 부산은 고향 그 자체였고, 부산에 있어 동국제강그룹은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기업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동국제강그룹은 주력 생산기지를 포항으로 옮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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